생각, 회고

1년간 함께한 스타트업을 떠나며

devMarco 2020. 8. 31. 19:34

들어가며

도비는 자유에요!

2020년 8월, 1년 간 함께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근무했던 회사는 반려동물 등록 서비스를 웹 기반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입사 후 6개월간 풀스택 개발자로, 남은 6개월을 백엔드 개발자로 일했다. 지난 1년간은 정말 쉼없이 달려왔던 거 같은데, 그 동안 일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회고록으로 남겨놓고자 한다.

팀과 제품을 고려하여 개발해야 한다.

팀 플레이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쿠로코의 농구 명대사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잘 하는 개발자란 주어진 기술적 요구사항을 빠른 시일 안에 처리해줄 수 있는 해결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더 빠르게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데 일하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스스로 개발자로써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 회사에사 사용 중인 기술에 대한 서적을 공부하고, 관련 라이브러리나 모듈을 많이 검색해봤다. 개발 툴 잘 다루는 법을 배우고, 노션을 활용하며, 업무시에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자주 썼다. 최고의 컨디션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비타민 등도 빠짐없이 챙겨먹었다.

개인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팀원이 적은 팀에서 일을 할 때는 잘 통했던 거 같다.(당시 개발팀 인원이 두 명 뿐이었다.)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주어진 업무를 큰 어려움 없이 처리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개발팀 규모가 커지면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파트가 분할이 되었고, 개발 프로세스가 많이 바뀌었다. 코드 컨벤션과 프로젝트 구조를 정해야 하고, 그 약속을 잘 지켜야 했다. 백엔드 관련 문서화도 꼼꼼히 해서 동료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개발할 때 혼선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풀스택으로만 일을 하다가 분업해서 협업하는 과정이 처음이다보니 초기에는 혼선을 많이 겪었다. 내가 작성한 코드 주석 혹은 개발 문서가 내용이 맞지 않는다던지, 코딩 컨벤션을 지키지 않아 다른 작업자가 보기 힘든 코드가 만들어지는 등. 개발 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팀에서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한다. 귀찮아서 5분 아끼려다 팀이 1시간 손해보면 그런 손해보는 장사가 어디있겠는가.

다른 팀원들을 성장시키는 재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필요해지면서 개발팀 뿐만 아니라 비개발자들도 SQL을 이용하여 사내 DB에 접근할 필요가 생겼는데, SQL을 가르칠 담당자가 필요했고 내가 그 역할을 자처했다. 일주일에 한 번 스터디하면서 SQL에 대해 강의도 했었다. 동료들이 SQL을 하나 둘 배워감에 따라 나중에는 스스로 데이터를 척척 뽑아 필요한 업무에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DB 관련 업무요청이 줄면서 개발팀의 업무 생산성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SQL을 가르칠 그 시간에 개발을 더 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팀이 더 성장했고, 팀에 이로운 방향의 의사결정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항상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주 특기는 집중과 문제해결 능력이다. 주어진 문제에 몰입하고 집중해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편이다. 그런데 업무하면서 자주 발생했던 아쉬운 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잘못 결정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속도가 빠르더라도 뒤로 갈 수가 있다. 특히나 내가 담당했던 백엔드 개발은 처음에 개발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팀원들이 고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의사 결정 능력이었기에, 이를 개선하고자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생각에 대한 부분이었기에 곧바로 해결되진 않았지만, 동료들의 피드백을 많이 반영하고 판단력과 관련된 책을 읽고, 스스로 기록을 통해 반성을 많이하면서 점차 방향 설정이 수월해졌다.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일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여러 대안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더 좋은 방향이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방에서 나가라. 사람을 만나라.

결국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사람을 모르는 개발자는 개발을 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발자가 손을 대는 코드가 결국 제품을 만들며, 그것이 사람에게 이로운 제품이라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기획이 들어온 것을 수동적으로 만들어줄 것이 아니라, 기술 책임자로써, 보조 기획자로써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더 나은 제품이 만들어진다. 개발 뿐만 아니라 소통, 미팅, 마케팅 원리, 비즈니스 방향 등을 고려해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잘 하는 개발자들은 방에서 혼자 개발하지 않는다. 개발 블로그에서 자기가 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잘하는 사람과 만나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는다. 잘하는 사람과 만나려면 연락을 해야하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를 얻는 데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결례가 아닐까? 좀더 잘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연락을 하게 되니 정말 수월했던 거 같다. 잘하는 사람이 모인 커뮤니티를 찾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세상엔 잘하는 사람이 많고 그중 도움을 주려는 선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 자신과도 소통을 잘 해야 한다.

스스로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평소에 나 자신을 보살펴야 한다. 평소에 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정작 나에 대한 소통을 잘 못했다. 퇴사를 결심하기 직전까지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몰랐다. 그러다보니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을 많이 했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일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돌아보고 나서야 내가 창업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 개월 전부터 이미 창업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된 책과 강의를 자주 들었다. 일을 정신없이 하는 속에서 창업이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었는지 몰랐다. 평소에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꿈이 큰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개발자로써, 인간으로써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이만큼 자기 삶에 열정적인 동료들과 일할 기회는 흔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빡세게 실무를 하면서 놓쳤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정리하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읽었던 책들을 읽고, 글을 써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의 인생에 대해서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해보고 싶다.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창업을 지금이라면 도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재취업을 해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지, 창업을 해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해볼 지 고민했다. 10년 뒤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결정이 뭘까를 생각해보니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앞으로의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업에 대해서 배웠던 다양한 이론들을 직접 실천해보며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현재는 2인 창업을 도전하려 준비하고 있다. 동업자는 자문을 맡고, 내가 CEO로써 마케팅, 기획, 개발, 운영 등 사업 메인을 담당하게 되었다. 개발은 조금이나마 프로로써 일을 해봤지만 창업을 한다는 건 정말 새로운 영역이다. 스스로가 창업에 대해서는 아직 문외한임을 알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일단은 비즈니스 모델부터 익혀서 사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도전은 계속된다.